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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설악산 석황사골 몽유도원도 리지산행

dolbaw 2018. 9. 6. 09:12

첨봉에 구름 꽂아두고 도원경은 꿈결처럼 흘러갔구나

[마운틴스페셜] 설악산 석황사골 몽유도원도 리지산행

월간마운틴 | 민은주 | 입력 2015.10.12 16:02

 

 

 

 

 

 

 

 

지상의 도원경을 찾아 몽유도원도 리지를 오르며 설악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이소희씨 사진=신희수 기자

밀리고 밀려 마감 중간에 취재일이 잡혔다. 바쁠 때 만사 제쳐두고 떠나는 설악산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산꼭대기에 걸린 구름마냥 들뜨는 마음과 어울리게, 올라갈 길의 이름도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다. 석황사골 푸른 물은 달이 바뀌어 더 차가울 테고, 신선이 노닌다는 신선대에는 복숭아 대신 국화가 만발했으리라. 설악산 장수대로 가는 길, 일상의 피로에 눈 감은 몸이 붉은 연봉 사이를 산새마냥 파드닥 날아오른다. 헛되고 달콤한 꿈이다.

리지 초입에서 슬랩까지의 능선은 로프 없이 걸어가도 충분하다. 사진=신희수 기자

가을이 쨍하다. 장수3교 앞 아스팔트 포장도로에서 설악의 좁은 길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햇살에 쫓겨 재빠르다. 순식간에 세계는 그림자처럼 어둡고 아늑해진다. 잘 다듬어진 평온한 길엔 졸참나무 도토리가 자잘하게 밟히고 산죽 밭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만화경처럼 일렁인다.

무릉도원의 꿈결을 함께 갈 이들은 이소희(손정준클라이밍연구소)씨와 이정훈(알비산악회)씨다. 십 수 년 이상 다양한 도전을 해 온 클라이머들에게 5.7급의 리지는 등반보다 산책에 가까울지 모른다. '로프 깔 데가 있을까? 일단 배낭에 넣고 가죠.' 슬링이 바람에 휘날리긴 한다만 등반이라기엔 애매한 바위 사이로 소나무가 불쑥불쑥 머리칼을 잡는다. 시퍼렇게 맑은 날이다.

 

아름다움이 발목을 잡아 걸을수록 길어지는 무릉도원

4인 2조, 40m 싱글로프 1동과 30m 트윈로프 2동, 프렌드 2조, 일행 중 유일하게 몽유도원도를 걸어본 이정훈씨는 '두어 번의 하강을 제외하면 로프를 사용할 일도 없는 길'이라고 장담한다. 허나 볼트가 반짝이는 10m 높이의 슬랩이 나오자 등반 경험이 많지 않은 신희수 사진기자의 얼굴에 긴장이 서린다. 홀드는 걱정 없이 많지만 좌우가 오싹한 절벽이다. '어깨 무겁게 매고 가면 뭐하랴' 여기서 장비를 착용하고 로프를 사용해 짤막한 슬랩에 이어진 걸어가는 길로 1봉을 오른다. 15m 가량의 짧은 하강 후에 다시 양호한 페이스성 슬랩을 등반하니 금세 2봉의 꼭대기다. 하강용 앵커도 있고 클라이밍다운도 가능하다.

1봉 정상까지 이어지는 슬랩은 홀드가 무척 좋지만 좌우가 오싹한 절벽이다. 사진=신희수 기자

굽이굽이 가야할 길이 눈앞에 환하게 열려있지만 어느 누구도 등반을 서두르지 않는다. 눈은 저절로 남쪽을 향한다. 가리봉(1519m)과 삼형제봉(1225m) 사이에 주걱봉(1401m)이 이름처럼 둥글게 구부러져있다. 동쪽에는 미륵장군봉(1000m)의 거대한 암벽이 부딪칠 듯 바짝 다가서고, 그 너머 장수대로 한계령으로 켜켜이 장벽 두른 능선이 물결처럼 바람에 흔들린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다워 두고 갈 수가 없다. 변변하게 등반한 것도 없지만 그늘에 자리를 잡고 쉬어간다. 아껴 마시는 물 한 모금, 떡 한 입이 즐겁다. 주말이면 용감무쌍한 등반가들로 분주할 미륵장군봉이 텅 비어 더욱 거대하게 보인다. 청원길, 체게바라길, 타이탄길, 다들 가본 길과 가고 싶은 길을 손가락으로 잇는다. 미륵장군봉에서 보는 이곳의 능선 역시 눈 돌리지 못할 만큼 아름다우리라.

몽유도원도에서는 내설악의 비경이 훤히 보인다. 건너편의 미륵장군봉을 바라보는 이소희씨 뒤로 가리봉과 주걱봉이 웅장하다. 사진=신희수 기자

산새와 산양의 길로 스며드는 평탄한 등반

몽유도원도엔 복숭아꽃 대신 국화가 한창이다. 파랗고 평평한 하늘 아래 희고 노랗고 불그스름한 것들이 저마다 눈치 보지 않고 환하게 피어났다. 평탄한 바윗길에서도 꽃이 시선을 빼앗아 난이도를 높인다. 싱그럽고 향긋한 솔 냄새와 바람이 투명하게 피부를 통과한다. 산의 아름다움은 눈이 아니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감각인지도 모른다. 짙은 녹색이 씩씩한 설악에서 가을은 아직 발치에서 아른거린다.

'좋구나', 그저 능선을 걷는 것만으로도 탄성이 절로 나온다. 며칠째 고생시키던 환절기 감기도 알러지성 비염도 설악산까지는 따라오지 못한 모양이다. 꽤나 지쳐있던 몸이 산에서 점점 가벼워진다. 이렇게 산새나 되었으면, 꿈속의 무릉도원을 거니는 이들에게 저 아래 장수대분소와 44번국도가 일상처럼 멀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에는 복숭아밭이 환했는데 석황사골의 몽유도원도 리지에는 유난히 소나무와 향나무가 많다. 사진=신희수 기자

로프를 목에 건 채 20m 쯤 걸어가 3피치를 시작한다. 툭 튀어나온 언더크랙을 넘어서면 책바위 형태의 크랙이 나타나고 이후엔 촉스톤이 박힌 침니가 이어진다. 다음 피치 역시 크랙이다. 이 구간에는 운 나쁘게 바윗길 사이에 자리를 잡은 나무들이 많아 적당한 위치의 기둥마다 온통 손때로 반들거린다. 안쓰럽고 기특한 마음에 가능한 나무는 잡지 않으려고 하지만 고마운 확보물임엔 틀림이 없다.

개념도 상으로 몽유도원도는 8개의 봉우리, 8개의 피치로 구분되지만 실제 등반에 있어서는 피치의 개념이 거의 없다. 하강 링을 제외한 확보앵커가 전혀 없어 나무를 이용하거나 프렌드를 설치해 등반을 끝내야 하며 초보자만 없다면 대부분은 걸어가도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취재팀 역시 로프를 목에 건 채 계단식 크랙을 따라 5피치까지 오른다. 여기서 10m 정도 하강을 한 이후 등반이 끝난 8피치까지 한 번도 다시 로프를 꺼내지 않았다.

두 번째 하강 이후엔 특별히 로프가 필요한 구간이 없다. 각자 걸어 오르는 능선에 국화가 만발해 가을의 시작을 알린다. 사진=신희수 기자

14년 전 마운틴 창간호에서 발견하는 ‘몽유도원도’와 ‘김기섭’

걸어가는 길에도 설악의 바위는 날이 서있다. 살짝 붙잡은 바위에 손톱 끝이 까져 따끔하다. ‘따갑다’ 느끼는 순간에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김기섭’, 그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여기 설악산 석황사골에 다시 그려낸 탁월한 개척등반가이다. 이 아름다운 길을 찾아내 일일이 다듬어 선을 잇고 꿈결처럼 애달픈 이름을 붙였다. 그뿐이랴, 노적봉의 ‘한편의 시를 위한 길’, 토왕골의 ‘경원대길’, ‘별을 따는 소년들’, 북한산 백운대의 ‘시인 신동엽길’, 도봉산 자운봉의 ‘배추 흰나비의 추억’ 등 14개의 암릉과 암벽루트들을 개척해 산악인들에게 큰 선물을 남겼다. 또한 그는 본지에 매달 한 편의 시를 발표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기자는 ‘배추흰나비의 추억’이라는 시를 그가 만든 아름다운 길만큼이나 아낀다.

그리움이 각질처럼 벗겨진 자운봉 자락에 앉아

온몸 가득 붉은 노을 문지르며 소멸을 관조하는 동안

꽃은 아무 데서나 피고 저물었다.

배추희나비의 추억 中

김기섭 作

또 하나, 그는 월간마운틴 창간부터 참여한 선배기자이기도 하다. 정확하게 14년 전인 2001년 10월 창간호에는 그해 7월에 김기섭씨가 개척을 완료한 ‘몽유도원도’ 등반기가 실려 있다. 르포르타주의 첫 문단을 대뜸 ‘한 여자’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그리움으로 시작하는, 지독한 탐미주의자의 글이다. 당시 김기섭씨는 이 길을 여백의 즐거움과 골산이 빗어놓은 ‘화엄으로 가는 은밀한 꿈’이라고 묘사했다. ‘몽유도원도’, ‘화엄’, 그가 이 아름다운 길에 부여한 모든 단어가 아프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꿈결에서만 이 첨봉을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2006년 김기섭씨는 인수봉에서 10여 미터를 추락하여 3, 4번 경추가 골절된 후 오랜 재활을 견디고 있다. 마운틴에 보내는 빛나는 시와 페이스북 활동, 이따금 산악잡지에 실리는 인터뷰에서 만나는 그는 여전히 용맹하게 하루하루를 온사이트하고 있다. ‘몽유도원도’ 이 천상의 정원을 가꾼 시인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며, 당신의 꿈에 우리를 초청해주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8봉에서 등반을 끝낸 후 기념사진. 등 뒤로 주걱봉의 생김새가 재미있다. 사진=신희수 기자

가파르고 험준한 급경사를 따라 석황사골로 하산

6피치의 짧은 날등을 오르니 다시 놀라운 진경산수화가 펼쳐진다. 여기서부터 7피치는 계단처럼 평탄한 길로 로프가 필요 없다. 8봉을 오르는 마지막 구간은 고도감이 대단하지만 크랙이 잘 발달한 쉬운 길이다. 군데군데 환약처럼 거뭇하고 동글동글한 산양 똥이 눈에 띈다. 무릉도원은 우리만의 곳이 아니다. 발걸음이 한결 조심스러워진다.

등반이 끝나는 8봉은 석황사골의 협곡 안쪽으로 들어서서 지나온 길에 비해 되레 시야가 좁아진다. 대신 미륵장군봉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경치가 좋은 바위마다 멈춰 서로의 모습을 담는다. 8봉의 정상이라 생각한 지점에 올라서니 서쪽으로 붉은 봉우리가 우뚝하다. ‘시루봉’이라고 이정훈씨가 설명한다. 십분 정도면 간단히 오를 수 있으며 시야가 무척 휘연하다.

30분 남짓의 급경사 하산을 끝낸 후 석황사골 넓은 암반에서 탁족을 즐기는 것도 몽유도원도 리지가 선사하는 기쁨이다. 사진=신희수 기자

순탄한 바위와 흙길을 따라 8봉을 내려가면 1060m봉으로 이어지는 좁은 안부가 나온다. 여기서 장비를 모두 정리해 배낭에 넣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하산 방향은 안부의 오른쪽 급경사 길이다. 자칫 낙석의 위험이 있는 너덜지대가 이어지며 세 군데 보조로프가 고정되어 있다. 내리꽂듯 떨어지는 가파른 급경사면을 30분 정도 내려가면 물소리가 들리고 어느새 석황사골이 나온다. 마치 즐거운 모임 뒤의 숙취마냥, 평탄한 등반 끝에 따라오는 꽤나 가파르고 긴 하산이다.

얕은 물이 지나는 널찍한 암반을 만나자 당연한 듯 모두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탁족을 즐긴다. 소스라칠 정도로 물이 차다. 팽창했던 모세혈관이 깜짝 놀라 오그라든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무릉도원의 마지막 풍경 또한 경이롭다. 석황사골 우측으로 우리가 지나쳐온 여덟 개의 봉우리가 붉게 이어지고 좌측의 미륵장군봉은 위압적일만큼 웅장하다. 구름이 꽂힌 기암괴석과 석황사골 협곡에 액자처럼 들어와 담기는 주걱봉, 몽유도원도를 떠나며 가슴에 담는 마지막 비경이다.

국화가 만발해 가을의 시작을 알리던 몽유도원도. 세상으로 내려오고 나서도 그 감흥이 오래 남는다. 사진=신희수 기자

무릉도원에서 쫓겨나는 길, 꿈처럼 안타까워라

협곡을 내려서면 볼트들이 별처럼 반짝이는 신선대 암장이 나타나고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아침에 걸었던 산죽 밭이다. 종일 신선 같았던 대화에도 이제 별 수 없이 세속의 냄새가 섞인다. '저녁 뭐 먹을까요?', '표지 사진 나오겠어요?', '마감은 맞출 수 있으려나요?' 다람쥐도 아닌데 발에 밟히는 도토리 하나하나가 아깝고 어디선가 새 우는 소리가 들린다. 내려가기 싫은 마음에 문득 오전에 꾸었던 미몽이 떠오른다. 산새가 되어 구름 꽂힌 첨봉 위를 날아올랐었지. 등 뒤에 두고 가는 것은 도원경처럼 달고 헛된 꿈인가.

어느새 국도에 도착한다. 마지막 문장은 14년 전 김기섭씨의 원고에서 빌려오겠다. ‘거긴 무릉도원의 끝이었다.’

몽유도원도 접근로

information 설악산 몽유도원도 리지

안산(1430m)에서 대승령으로 약 750m 가면 1396m봉이 나온다. 이 평평한 봉우리에서 정남향으로 내려오다 두 번째 1060m봉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남서쪽으로 빠지는 능선이 한계고성릉이다. 몽유도원도는 같은 1060m봉에서 빠져 나온 줄기가 남동쪽으로 갔다가 남쪽 부근에서 암릉을 형성한다. 몽유도원도의 총 등반 길이는 약 500m이며, 슬랩과 크랙이 주를 이룬다. 5.2∼5.7급의 초급자 루트로 2~3번의 하강이 필요하다. 하강용 앵커는 있으나 등반종료 지점의 확보 앵커는 없어 자연지형물을 이용하거나 프렌드를 사용해 직접 앵커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1992년 하이얀산악회가 초등하고 2001년 경원대 산악부의 김기섭, 이종서, 강남수씨와 함백오름의 이계숙씨가 재개척했다.

등반시간과 소요장비

취재진은 4인이 2조로 나눠 등반했으며 어프로치에서 하산까지 총 5시간, 등반은 약 3시간 30분이 소요됐다. 장비는 1조는 40m 로프 한 동과 30m 보조로프 2동을 사용했고 각 조별로 프렌드 1조 알파인퀵드로 6개를 준비했다. 긴 슬링이 있으면 유용하다.

접근

석황사골은 몽유도원도로 가는 기점으로, 장수대분소에 차를 세우고 인제방면으로 걷다가 설악산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설치한 표지판을 기점으로 산행에 들어선다. 완만한 산길은 중간에 두 개로 갈라지는데 리지 초입 직전에 다시 만난다. 석황사터로 가려면 오른쪽 길을 택하고 몽유도원도로 바로 가려면 직진하면 된다. 리지 초입에서 오른쪽 바위 사면을 올라 잡목 사이로 난 길을 따르면 1피치 시작 지점이 나온다. 관리공단 표지판에서 리지 초입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0분이 소요된다.

14년 전 월간마운틴 창간호에 실렸던 ‘몽유도원도’ 개념도. 이 길을 개척했던 김기섭씨가 직접 제작했다.

하산

8봉을 지나 1060m봉에서 내려온 좁은 안부에서 오른쪽 급경사 길로 하산하면 된다. 급경사가 심해 낙석과 미끄러짐을 주의해야 한다. 보조로프가 설치되어 있으며 30~40 정도 하산하면 석황사골 넓은 암반에 닿게 된다.

탈출

첫 번째, 두 번째 하강지점에서 가능하다. 첫 번째 하강지점에서 벽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면 리지 초입이 나온다. 5피치를 끝내고 두 번째 하강지점에서 탈출할 경우 왼쪽의 큰 소나무에 슬링을 설치하고 자일 한 동을 걸고 하강한다. 이후 경사가 약한 바위 사면을 주의를 기울이며 오른쪽으로 붙어 내려가면 좁은 골짜기가 나온다. 이 골짜기를 따라 계속 내려가면 제2장수교 못 미친 지점에 닿게 된다.

민은주 / ejmean@emountain.co.kr

출처 : dandakhan scrapbook
글쓴이 : 단다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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